해외유학파·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사람·자연 공존 세상 가꿔부싯돌로 불 피우고 빗물로 설거지…"이기적 삶 돌아보는 공간"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보이더라구요. 풀과 나무, 하늘, 공기와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충북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에는 '스페이스 선(仙)'이라는 세련된 이름의 농촌체험 농장이 있다. 사람(人)과 자연(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공동 운영하는 다섯 명은 모두 도시를 떠나 귀농한 청장년들이다.명상 모임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 '귀농 5남매'는 저마다 다양한 경력과 개성을 지녔다. 대표 엄수정(39·여) 씨는 미국 뉴욕에서 유학한 해외파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가 연극 치료와 명상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됐다. 김덕겸(45) 이사는 대기업 강의도 많이 한 물리치료 전문가로, 자가치료 건강법을 가르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유승완(41) 팀장은 동물 관련 체험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다. 대안학교 선생님이었던 이왕근(48) 팀장은 아이들 체험 프로그램을, 중국 베이징에서 영화를 전공한 박지애(25) 팀장은 큰 영화사 근무 경험을 살려 홍보를 전담한다. 이왕근 팀장만 빼고는 모두 싱글이다. 자연이 좋아 산, 들과 결혼한 거 아니냐는 농담을 서로 주고받곤 한다.예비 사회적 기업인 '스페이스 선'은 '촌스러운 하루'라는 농촌생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한 농촌 체험이 아니라 자연생활 체험에 가깝다. 체험객들은 텃밭의 채소를 손수 뽑고, 가마솥에 장작을 때서 끼니를 마련한다. 불도 성냥이나 라이터로 붙이는 게 아니라 부싯돌을 이용해 직접 피워야 한다. 설거지는 모아둔 빗물로 하고, 볼 일도 물을 전혀 안 쓰는 생태화장실에서 봐야 한다. 편리한 생활이 몸에 밴 요즘 사람들에겐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체험을 하고 난 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좋단다. 엄 대표는 "친환경, 자연친화 같은 개념은 어렵고 머리 아프다고 여기기 쉽지만, 막상 체험을 해 보면 '생각보다 할 만하다, 괜찮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쓰는 빗물저장탱크와 생태화장실, EM(유용미생물) 제품 제조 등은 스페이스 선의 또다른 주력 사업이다. 이들 5인방은 2013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멘토링과 컨설팅 교육을 거쳐 지난해 2월 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모두가 동등하다는 뜻에서 법인 설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직함만 빼고는 모두 팀장으로 통일했다. 급여도 다섯 명이 십원 한푼까지 모두 똑같이 받는다. 처음에는 사업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로 시작했다. 귀촌해 농사를 지으면서 세제와 비누, 샴푸,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썼다. 불편한 점을 개선하려고 만든 것이 자연스럽게 사업 아이템으로 이어졌다.스페이스 선은 천연제품 제조, 식물에너지를 이용한 치유, 자연농법, 동물 체험, 명상에 이르기까지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고용노동부 주관 소셜벤처경영대회 글로벌 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내년 중학교 자유학기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충주교육지원청으로부터 우수 진로체험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엄 대표는 "시골에 와서 살다 보면 그동안 나 혼자 편하자고 다른 존재를 얼마나 많이 해치면서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며 "자연을 몸으로 느끼면서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kong@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12/31 11:53 송고